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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해

에베소서 2:14-16 · 빌립보서 2:5-8 · 고린도전서 6:7 · 마태복음 5:23-24

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치르면서까지 화해에 사로잡히셨습니다. 화해에는 양쪽의 겸손이 필요하며, 우리는 옳음보다 화해를 택합니다.

오늘의 묵상

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원수 되었던 우리를 자신과 화해시키셨습니다. 그리고 그 화해를 받은 우리에게 "화해의 직분"을 맡기셨습니다.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은 사람과의 깨진 관계를 그냥 둘 수 없습니다.

지금 당신에게 화해가 필요한 관계가 있습니까?

십자가의 화해를 받은 사람으로서, 먼저 다가가는 한 걸음은 무엇일 수 있을까요?

오늘의 요약

사람이 창조주에게서 분리되면 그 소외가 사람 사이의 관계로도 옮겨집니다 — 편견, 미움, 깨어진 관계는 모두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의 표현입니다. 이 모든 소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화해에 사로잡혀 있습니다.

> "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...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." (에베소서 2:14-16 중에서)

십자가에서 발견되는 화해는 이중적입니다 — 먼저 우리를 하나님과, 그다음 우리를 서로와 화해시킵니다. 어떤 관계든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양쪽에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. 겸손의 반대인 교만은 대개 잘못 찾기로 나타나, 우리는 화해보다 상대의 잘못을 찾는 데 더 몰두하곤 합니다. 하나님은 결코 겸손하실 필요가 없으셨지만, 우리를 화해시키려고 그리스도께 믿을 수 없이 겸손한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.

> "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...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." (빌립보서 2:5, 8 중에서)

만약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잘못을 따지는 데 관심을 두셨다면 결코 십자가로 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. "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"라는 말씀은 그분이 잘못 찾기가 아니라 화해에 사로잡혀 계셨음을 보여줍니다.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— 자신의 죄를 보기보다 하나님의 잘못을 찾으려 합니다.

형제자매와 멀어졌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도 여기서 배웁니다. 갈등이 생겼을 때 "십자가의 관점"이 필요합니다. 관계의 갈등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풀고 싶다면, 십자가를 새롭게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겸손을 기억하십시오. 누군가 앞에 자신을 낮출 마음이 없다면, 사실은 화해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.

> "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." (고린도전서 6:7 중에서)

상대에게 상처를 표현하되, 더 중요하게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십시오. 무엇보다 "옳기보다 화해하기를 원한다"는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. 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치르면서까지 화해에 사로잡히셨습니다. 당신도 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을 뜻할지라도 — 화해에 열정을 품으시겠습니까?

함께 읽는 책

오늘 묵상은 『십자가 아래에서 30일』(DPI) 스물아홉째 날의 흐름을 따릅니다. 위 내용은 UBCOC가 정리한 요약이며, 원문 그대로의 글(저자의 개인 간증 포함)은 원서를 통해 읽으시기를 권합니다. [대여/구입 안내 입력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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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저: Thirty Days at the Foot of the Cross (DPI, 1993) · 본 페이지는 UBCOC의 요약·묵상 안내이며, 전문은 원서를 구입해 읽으시기를 권합니다.